제 보 자 : 조효래(여,90세) - 전남 순천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한문과 한글을 많이 익혀 중국과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밝으며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
우리 친정집의 400년도 넘는 매우 윗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할아버지께서 장개를 간 후 몇 년이 지나도록 애기가 생기지 않아서 걱정이 되드래.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께서 순천 주암의 에미산을 찾아가서 훌륭한 아기를 점지해 달라고 공을 들이러 다녔어요.
[조사자: 대개 기자치성은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하지 않아요. 제보자: 물론 그렇 기는 헌디 전에 정성이 깊고 부부간의 금슬이 좋은 사람은 부부가 같이 또는 남자가 앞장서서 하는 경우도 있지라우.]
하루는 우리 할아버지가 치성을 드리러 갔는데, 그만 대나무 조리를 안 가지고 갔드래요. 그러니까 치성을 드리러 갈 때는 항상 쌀과 조리를 가지고 가는 갑디다. 양푼에 담은 쌀을 물로 씻어서 조리로 일어내어 제단에 진설하고 공을 비는 것이지요. 옛날에는 맨 흙의 마당에서 벼의 탈곡을 하였기 때문에 유난히 쌀 속에 가는 돌이나 모래가 많이 섞여있어 매끼니 밥을 할 때마다 쌀을 조리로 일었응께. 더더구나 천지신명께 바치는 쌀은 정갈해야 할 것 아니요.
인자 조리를 안 가지고 와서 다시 집으로 가질러 가는데, 산의 초입부근의 길옆에 어성버성한 총각이 앉아서 머리에 지름(기름)을 찍어서 바름시로(바르면서) 우리 할아버지에게도 기름을 찍어 발라 보라고 권하드래. 할아버지는 왠 누추한 사람이 기름을 발라보라니까, 선뜻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남의 호의를 무시할 수가 없어 총각옆으로 갔어요.
기름을 바르고 있으니까 총각은 ‘나는 다름이 아니라 에미산 당산목신(堂山木神)인디, 지악없는(생각없는) 주민들이 당산나무를 베어젖혀서 나무가 쓰러질 때 다리를 다쳐 이렇게 발에 헝겊을 감고 있다’ 고 말하드래 .
이어서 “나는 운덤없는(위로 뻗어 자라나는 기운이 없는) 병신짜리 신이지만 당신의 정성이 가상하여 복있는 얘기를 해주겠소. 당신의 집안에서는 지금 이후로 ‘팔도병사(八道兵使)에 삼도툉계사(三道統制使)’가 나올 것이요”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는 겁니다.
할아버지의 정성이 워낙 크다 보니 이에 감동한 신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진 것이제. 정말 얼마 후에 아들이 생기고 점차 자손이 번창하여 우리 집안에서 조선시대에는 고관이 많이 나왔고 해방 이후로는 여러 명의 국회의원이 당선되었어. 다 공을 들이면 그만큼 복을 받게 되는가 봅디다.